두 가지 약속, 사람과 AI가 함께 일한다는 것

2026년 4월 18일 토요일

어느덧 다시 팀을 이끌게 되었다. 그런데 이번 팀에는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AI도 어느새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무엇부터 정해야 할까. 팀을 다시 맡으며 가장 먼저 든 고민이었는데, 그 결이 예전과는 사뭇 달랐다.

AI와 함께 일을 해보면서 한 가지를 느꼈다. goal이 분명할수록 결과가 좋다는 것이다. 무엇을 원하는지 또렷하게 전달할수록 돌아오는 결과물의 질이 달라졌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건 AI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 분명할 때 팀은 가장 좋은 결과를 낸다. 사실 AI가 등장하기 한참 전부터도, 팀을 한 방향으로 바라보게 하고 운영하려면 결국 어떤 '기준'이 필요했던 것 같다. 그래서 사람과 AI 모두를 염두에 둔 '팀 원칙'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원칙을 세우며 한 가지 기준을 두었다. 앞으로 AI 기술이 더 발전하고 사회가 바뀌더라도, 변하지 않을 것들만 고르자는 것이었다. 변하는 것에 기대어 세운 원칙은 금방 낡아버릴 테니까. 그렇게 추려보니, 결국 팀 원칙은 두 가지 약속으로 정리되었다. 하나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약속인 '신뢰', 다른 하나는 사람과 AI 사이의 약속인 'AI Native'다.

먼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약속, 신뢰다. 팀이 커지면 어쩔 수 없이 여러 프로세스와 규칙이 생겨난다. 하지만 팀의 규모가 작을 때는, 오히려 상호 신뢰를 유지하는 것이 가장 비용이 저렴한 방법이었던 것 같다. 서로 업무상의 신뢰가 있으면 굳이 일일이 확인하지 않고 믿고 맡길 수 있는 일들이 생기고, 눈에 보이지 않는 비용들이 많이 줄어든다. 반대로 어떤 사고가 있거나 서로에 대한 신뢰가 한 번 무너지기 시작하면, 작은 팀이라도 하나둘씩 규칙과 절차가 자라나기 시작한다. 어쩌면 프로세스란, 신뢰가 빠져나간 자리를 메우려고 생겨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무엇이 신뢰를 만드는 걸까. 지난 경험들을 돌아보고 여러 책을 다시 들춰보면서, 나는 세 가지로 정리하게 되었다.

첫 번째는 예측 가능성이다. 말과 행동이 일관된 사람에게서 우리는 신뢰를 느낀다. 작게는 미팅 시간 약속을 잘 지킬 것이라는 기대부터, 크게는 맡긴 일이 어떤 결과로 돌아올지 가늠이 되는 것까지. 다음이 예측되기에 마음 놓고 함께 일할 수 있는 것이다.

두 번째는 투명함이다. 작은 팀일수록 논의가 활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 좋은 서비스를 만들기 위해서도 그렇고, 혼자만의 생각으로는 닿을 수 없는 한계를 넘기 위해서도 토론은 중요하다. 그래서 자기 생각을 적극적으로 꺼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 반대로 모두가 이야기를 나눌 때는 조용히 있다가, 막상 합의된 내용을 실행할 단계에서 갑자기 다른 말을 하거나 다른 방향으로 움직인다면, 그것만큼 신뢰를 갉아먹는 일도 없다. 논의할 때는 투명하게 자기 생각을 내보이고, 한번 합의된 것은 깔끔하게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 그런 사람이 신뢰를 준다.

세 번째는 완결성이다. 일을 벌이기는 잘 하지만 마지막 마무리를 매번 흐지부지 넘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주어진 상황이 어떻든 끝내 결과를 만들어내는 사람이 있다. 나는 후자를 신뢰하게 되는 것 같다. 약속한 범위와 수준을 끝까지 책임지려는 태도가 보이기 때문이다.

다음은 사람과 AI 사이의 약속, AI Native다. 우리 팀은 AI Native를 지향한다. AI와 나란히 일하기로 한 이상, 그 관계에도 약속이 필요했다. 무엇을 약속하면 좋을까, 그리고 서로에게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을 한참 붙들고 있다가 역시 세 가지를 떠올리게 되었다.

첫 번째는 맥락 공유다. AI는 앞으로도 점점 더 똑똑해질 것이다. 그 똑똑함과 협업의 시너지를 끌어올리려면, 결국 '맥락'을 잘 건네는 일이 핵심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AI는 사람에게서 더 많은 맥락을 받기를 기대하고, 사람은 맥락을 충분히 전달할수록 더 나은 결과를 돌려받을 것이라 기대할 수 있다. 서로가 서로에게 거는 이 양방향의 기대가, 어쩌면 사람과 AI 사이의 가장 기본적인 약속이 아닐까 싶다.

두 번째는 가역성이다. 되돌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AI가 하는 행동의 기본값은 언제든 되돌릴 수 있는 형태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되돌릴 수 없는 상황에서는 AI에게 더 과감한 일을 맡기기가 어려워진다. 혹여 원하지 않은 결과물이 나왔을 때, 그것을 되돌리는 데 사람과 AI 양쪽 모두 적지 않은 리소스를 쏟아야 하기 때문이다. 되돌릴 수 있다는 안전장치가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AI에게 더 적극적으로 손을 내밀 수 있다.

세 번째는 엔트로피 관리다. AI가 가장 잘하는 일이 무엇일까 생각해보면, 결국 '생성'이다. 코드든 글이든 문서든,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속도만큼은 사람이 따라갈 수 없을 만큼 압도적이다. 그런데 사람이 기준을 세우거나 검증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AI가 쏟아내는 결과물에는 불필요한 정보가 점점 쌓이고, 의미 없는 생성물 탓에 전체의 품질이 오히려 나빠진다. 그래서 사람에게는, 이 엔트로피를 관리해서 AI가 높은 품질의 결과를 내도록 돌볼 의무가 있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이렇듯 많은 고민 끝에 원칙을 세우게 되었지만, 이것이 시작일 뿐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다. 결국 이 원칙을 팀원들에게 꾸준히 공유하고, 나 스스로도 지키고자 노력하며, 팀원 모두가 함께 지켜내려 애쓸 때에야 비로소 의미가 있을 것이다. 앞으로 부족한 점이 드러나기도 하고 원칙 자체가 조금씩 다듬어지기도 하겠지만, 결국 내가 바라는 것은 이 약속들을 사람과도, AI와도 한 걸음씩 지켜가는 일이다. 그렇게 천천히, 그러나 멈추지 않고 좋은 팀을 만들어가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