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콕스웨이브에 합류한 지 1년이 조금 넘었다. 며칠 전, 'Engineering Manager'로 직무를 옮기기로 했다. 직무를 옮기기로 한 김에 지난 1년을 천천히 돌이켜보게 되었는데, 가장 먼저 떠오르는 한 장면은 의외로 작년 12월의 어느 평일이었다.
2025년 12월 초의 어느 날, 나는 내가 2주는 걸릴 것이라고 생각했던 작업을 이틀 만에 끝냈다. 정확히는, 내가 끝낸 것이 아니다. 급하게 데모용 웹앱 하나를 만들어야 했고, 코드의 대부분은 Claude Code(Opus 4.5)가 짜냈다.
그동안 나는 프론트엔드를 작업할 때마다 세션 회고를 쌓아오며 내 판단 기준을 한 줄씩 정리해왔다. 그 기록들이 쌓이면서, 어느샌가 내가 짠 코드와 AI가 짠 코드 사이에 큰 차이가 없다고 느끼게 되었던 것 같다. 내가 짠 코드를 AI로 검토할 때 큰 터치가 들어오는 일이 줄어들었고, 반대로 AI가 짠 코드를 내가 리뷰할 때도 별다른 수정 없이 승인 버튼을 누르는 경우가 점점 늘어났다.
그런데 그날은 달랐다. 코드의 결이 비슷하다는 것은 어느덧 받아들이고 있었지만, 속도까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었다. AI 이전 시대였다면 내가 직접 짜는 경우 분명히 2주는 걸렸을 작업이 이틀 안에 마무리되는 것을 눈으로 보면서, 이게 된다고? 하는 말이 속으로 한 번 떠올랐던 것 같다. 그날 느낀 압도적인 속도감. 언젠가 마주할 그날이 내 눈앞에서 보여지고 있었다. 일종의 현타가 왔던 것 같다.
그때 나는 회사 근처 와인샵에 들러 포트와인 한 병을 사 왔다. 자리에 앉아 와인을 마시며, AI가 코드를 짜내는 과정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누군가는 그 풍경에 낭만이 있다고 했다.
그날 이후로도 평소와 다름없는 일상이 이어졌다. 그런데 머릿속의 무게중심은 어느샌가 AI first로 옮겨진 상태였다. 그동안 깎아온 프론트엔드 엔지니어 페르소나를 팀에 공유했고, 다른 엔지니어들도 그 페르소나를 빌려 풀스택으로 개발해볼 수 있는 환경을 같이 만들어두었다.
그렇게 AI와 라포를 쌓아가며 조금씩 생산성을 끌어올리려는 시도를 하고 있던 어느 날, 대표로부터 팀 리딩 제안을 받게 되었다.
사실 팀 리딩은 처음이 아니다. Swingvy 조직에서는 직무로는 프론트엔드 엔지니어였지만 공동 창업자로서 자연스레 팀 관리와 리드 역할을 같이 맡았었다. 그때 나는 사람을 관리한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그리고 얼마나 큰 정신적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지를 많이 체감했던 것 같다.
그 회사를 나온 이후로는 자유롭고 싶었다. 한동안 프리랜서로 지내며 그저 코드만 짰다. 순수하게 개발에만 집중했던 시간은, 돌이켜보면 무척 자유로운 시간이었던 것 같다. 그러다 AI를 알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콕스웨이브에 합류했고, 그렇게 1년 남짓이 흘렀다.
제안을 받은 순간 나는 의외로 담담했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올 것이 왔다는 것이었다. 팀 분위기와 팀원들의 자리를 들여다볼 때마다 누군가가 리드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느낌을 갖고 있었고, 내가 과거의 경험을 살려서 리딩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던 차였기 때문이다.
부담은 된다. 리딩의 무게감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인연이 닿은 팀원들 모두가 잘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기에, 한번 잘 리딩해보자는 마음 가짐을 해본다. 이럴 때 항상 되뇌이는 생각이 있다. '어떻게든 잘 되겠지'. 현재에 집중하다보면 뭐든 되어있던데 이번에도 마찬가지일거라 생각한다.